[아프리카인물열전](42) 그래미 5회 수상…'노래하는 인권운동가' 안젤리크 키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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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냉 출신의 안젤리크 키조가 2008년 2월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린 제50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컨템포러리 월드 뮤직 부문 트로피를 머리에 얹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아프리카 전통 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세계 대중음악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서아프리카 베냉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안젤리크 키조.
그는 미국 최고 권위의 음악상인 그래미상을 무려 5차례나 수상한 세계적인 스타이자, 아프리카의 빈곤 퇴치와 여성 인권 신장에 앞장서는 '문화 외교의 아이콘'이다.
음악이라는 만국 공통어를 통해 아프리카의 역동성과 영혼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그의 삶은 1960년 베냉의 항구 도시 우이다에서 시작됐다.
키조는 공연 예술가였던 어머니와 음악을 사랑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일찍부터 음악적 재능을 키웠다.
1980년대 초 조국 베냉에 공산주의 독재 정권이 들어서고 예술가들에게 체제 선전용 음악을 강요하자, 키조는 예술적 자유를 찾아 1983년 프랑스 파리로 망명길에 올랐다.
파리에 정착한 그는 재즈 학교에서 음악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아프리카의 전통 타악기 리듬에 미국의 재즈, 펑크, 라틴 음악, 알앤비(R&B) 등 다양한 장르를 접목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베냉 출신의 가수 겸 활동가이자 유니세프(UNICEF) 친선대사인 안젤리크 키조가 2012년 12월 28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저녁 공연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키조의 음악은 서구 사회가 아프리카 음악에 대해 흔히 갖는 '토속적'이라는 편견을 철저히 깨부수며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1990년대 발매한 앨범 '로고조'와 '아예'가 상업적 성공을 거두며 글로벌 스타로 발돋움했다.
폰어, 요루바어, 미나어, 프랑스어, 영어 등 5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는 카를로스 산타나, 존 레전드 등 세계적인 팝스타들과 협업하며 세대와 장르를 초월한 음악을 선보여 왔다.
이런 음악적 성취는 화려한 수상 경력으로 이어졌다.
2008년 앨범 '진 진(Djin Djin)'으로 첫 그래미상을 품에 안은 이후, 2015년 '이브(Eve)', 2016년 '싱스(Sings)', 2020년 '셀리아(Celia)', 2022년 '마더 네이처(Mother Nature)'로 총 5개의 그래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베냉 출신 가수 안젤리크 키조가 2011년 12월 11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콘서트'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이 공연은 1994년 이래로 매년 열리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2023년에는 '음악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폴라음악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그의 앨범들은 뚜렷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브'는 아프리카 전역의 여성 합창을 담아 아프리카 여성의 강인함에 헌정했고, '마더 네이처'는 기후 위기 속 청년 세대의 연대를 촉구했다.
한국 팬들과도 직접 호흡한 적이 있다.
그는 지난 2011년 3월 13일 서울에서 첫 단독 내한 공연을 가졌다. 당시 국내 관객에게 다소 낯설었던 서아프리카 특유의 역동적인 '다중 리듬'(폴리리듬)에 재즈와 펑크를 곁들인 폭발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평소 "음악은 우리가 얼마나 단단히 연결되어 있는지 가르쳐주고, 서로 존중하며 함께 나아갈 공통의 기반을 찾아주는 수단"이라고 강조해 온 그의 철학은 아프리카어와 프랑스어, 영어를 넘나들며 자유를 노래한 내한 공연 무대에서도 고스란히 증명돼 큰 감동을 안겼다.
무대 밖에서 그는 "아프리카는 빈곤과 질병의 대륙이 아니라, 재능과 영감이 넘치는 대륙"이라는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인권 운동가이자 외교관이다.
2002년부터 유니세프 친선 대사로 활동하며 전 세계 분쟁 및 빈곤 지역 아동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베냉 출신의 가수 안젤리크 키조가 2026년 9월 29일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제27회 조이 오브 재즈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마친 뒤 언론과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2006년에는 아프리카 소녀들의 중등 교육과 직업 훈련을 지원하기 위해 '바통가 재단'(Batonga Foundation)을 직접 설립하기도 했다.
아울러 세계경제포럼(WEF) 등 주요 국제회의에 단골 연사로 참석하면서 선진국 지도자들을 향해 아프리카를 동정의 대상이 아닌 '동등한 파트너'로 대우할 것을 거침없이 요구하고 있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도 왕성한 창작 활동과 국제적 행보를 이어가는 키조. 시대의 아픔을 축제의 음악으로 승화시킨 그는 아프리카가 지닌 무한한 잠재력을 전 세계에 알리는 가장 강력한 목소리로 남아 있다.